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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나에 대하여 너무 과대 해석을 하지 말라(2005/04/04-sina) 게시물 포워드 프린트 형식 
작성일: 2005/04/12, 00:02:10
작성자: 박소현

▶ 2005년 4월 4일 羊城晩報 (출처 : ent.sina.com.cn)

▣ 주성치 : 나는 후현대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에 대하여 너무 과대 해석을 하지 말라

막 막을 내린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주성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이다. 이번에 감독상과의 인연이 없음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은 일부러 그 원인을 분석한 글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니, 주성치가 중화권 영화에 공헌이 있음은 확실한 것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주성치와 그의 영화에 너무나 많은 책임감과 내포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저에 대해서 너무 과대 해석하지 마세요.”

그는 낯선 환경에서는 저조함과 겸허함, 그리고 내향적인 면을 유지한다. 그러나 홍콩 혹은 그가 잘 아는 언어 환경 등과 같은 그에게 익숙한 환경에 돌아오면, 그는 갑자기 장난스러운 어린아이처럼 입담이 좋아지고 각종 사물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직접 발표한다.

외부에서 관찰해 보면, 주성치는 하나의 표본이다. 42세의 남성, 머리는 이미 흰머리가 왕성하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며, 품위를 중히 여긴다. 그러나 몹시 간결하고 편한 것을 좋아한다. 목욕하는 것을 사랑하여 항상 2시간 씩 목욕을 즐긴다. 목욕에 대하여 그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제 대사의 생산점은 매우 특이합니다.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목욕할 때, 머리까지 물에 담그고 나면 특별한 영감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목욕하는 것을 특히 좋아합니다. 매번 목욕하는 시간은 2시간이에요.”

목욕하는 시간에 비하여 그의 잠자는 시간은 아주 부족하다. 그는 4시간을 자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오히려 특별히 피곤함은 느끼지 않는다고.

2004년 12월, [주성치 전국 순회 대학 강연]은 상해, 성도, 북경, 세 지역에서 거행되었다. <優雅> 잡지는 전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의 문화 부호로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김용과 더불어 토론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성치는 직접적으로 “저는 무엇을 후현대라고 부르는지 몰라요.”라고 말하였다. 구조해체나 신성, 이러한 어휘들에 대하여 주성치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그도 자신이 조금은 과도한 해석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 21년 영화 인생 : 천재의 신경질

영화 <쿵푸허슬> 돼지촌은 주성치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것이다. 주성치는 말하길,
  “제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아주 비좁았어요. 이웃들이 빽빽이 서로 부딪쳐 가면서 함께 살았죠. 그런 지역의 사람들이 어떨지 손금 보 듯 훤할 거에요. 그러나 이렇듯 평범한 이웃 생활 표면 아래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숨겨져 있어요. 예를 들어 볼께요. 어느 날 저는 이웃 사람이 무공을 할 줄 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그를 할아버지라 부르며,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아왔었어요. 제가 아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분이 뜻밖에도 무림고수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무림고수였어요.”

그러나 현실의 생활은 힘들고 어렵다. 그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다. 3명의 여자형제들이 있었고, 부모님은 그가 어렸을 때 이혼을 하셨다. 어머니 능보아는 그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성치’라고 이름 지은 것도 깊은 뜻이 있었다. 작년 12월 5일, 주성치는 서남민족대학(西南民族大學)에 초청되었다. 당시 초대 손님으로 나온 위명륜(魏明倫)은 그에게 그의 이름이 <滕王閣序>의 “雄州霧列, 俊采星馳”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를 물었다. 주성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모친이 매우 예술적 세포를 지닌 사람이라고 여겨 왔다고 말하였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오락성이 가득하다고 말하였다. 주성치의 ‘모레이터우’ 스타일이 하나의 장르가 된 후, 그는 자신의 유머감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전수 받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중학 5학년 때, 그는 학업을 그만 두었다. 찻집에서 웨이터도 했었고, 공장에서 노동자 일도 했었다. 18세 때, 주성치는 그와 같이 스타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 양조위와 홍콩 TVB 방송국 연예 훈련반 시험을 보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양조위는 붙었지만 자신은 실패를 맛보게 된다. 후에 그는 시험에 합격하였고, 그의 연기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는 마치 안전감이 결여된 사람 같다. 6월 22일 생, 게자리 남성은 곳곳에서 안전감이 결핍되어있다. 매번 차를 탈 때마다, 가장 안쪽의 창가 자리를 선택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의 내심에는 우리가 엿볼 수 있는 초조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초조함에 대해서 영화 제작 파트너인 주가흔(朱家訢)은 ‘천재의 신경질’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주성치와 함께 일하면서 불쾌한 적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주성치의 생각의 노선이 실제로 너무 빠르게 변해서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아주 많은 인력과 장비들을 투입해서야 그의 생각의 변화를 따라 갈 수가 있답니다.”

약간은 마르고 1미터70이 안 되는 키의 42세의 남자는 여전히 전 중화인 세계의 희극 세포이다. 주성치의 백발은 사실 반은 진짜이고 반은 가짜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길,
  “흰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했더니, 다시 자라 나오더라고요. 오히려 전체를 흰색으로 염색하는 것이 더 나아요.”

21년이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연기와 함께 하였다. 영화 밖과 안을 판별하기가 어렵다. 인생이 영화이고, 영화가 인생이기 때문이다.

- 전국 순회 대학 강연 : 학자보다 더 인기가 많다

2004년 11월 말에서 12월 초, 주성치는 북경, 상해, 성도의 세 지역에서 대학 강연 활동을 펼쳤다.

- 상해 : 여학생이 울다

주성치가 양복을 입고 푸동공항에 나타났을 때, 기자는 그가 마침내 의복을 잘 갖춰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강한 항의를 하며, “이것도 가죽 신발이에요.”라고 말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검정색 가죽류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주성치는 어떤 면에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환영의 의미로 꽃다발을 전해주자, 주성치의 반응은 매우 무뎠다. 한자 한자 띄엄띄엄 말하길,
  “너,무, 격,식,차,릴,것,없,어,요”

후에 주성치 주위에서 ‘우와, 주성치다’라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머리를 숙인 채 걸어 나갔다. 바람이 너무 강해 손에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그는 침착하게 허리를 숙여 모자를 주었다. 교통대학이 공항으로 파견한 두 명의 보안요원들은 주성치의 습관을 정확히 짐작할 수가 없어서, 그의 곁에 바짝 붙지 않았다. 그와 2발자국 가량의 거리를 유지하였다. 결국 주성치는 차에 오르자 말하길,
  “저 두 보안요원은 별로 일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오후 2시, 근 2000여 명의 교통대학 학생들이 대강당에 모여들었고, 아침일찍부터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강연회에서 주성치는 도량을 발휘하여, 그 때문에 울음을 터트린 여학생을 무대 위로 불러 사인도 해주고, 포옹도 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어 주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빛은 황색이었으며, 평범한 옷을 입은 주성치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상해 푸동공항 2층에서, 배가 고픈 주성치는 가장 큰 소망이 바로 뜨거운 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음식을 내놓음과 동시에 웃으면서 다이어리를 꺼내며 주성치에게 기념 사인을 부탁하였다.

- 성도 :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다

주성치는 남흑색의 양복을 입었다. 검정색 점퍼는 손에 들고 있었다. 안에는 축구공이 그려진 긴 티셔츠를 입었는데, 한쪽 소매는 녹색이었고, 다른 쪽 소매는 파란색이었다. 상해때 보다는 더욱 자유분방해진 듯하다.

캠퍼스는 흡사 축제 기간 같았다. 학생들은 캠퍼스 이곳저곳에 모여 있었고, 들풀과 같아 쉽사리 불이 붙었다. <쿵푸허슬>의 커다란 홍황색 포스터가 들판을 태우는 불길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불태웠다.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생들의 질문은 사실 수준이 높지 않았다. ‘저녁에 함께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나요?’라든가, ‘저에게 애교 띤 눈웃음을 보여 주세요’라든지, ‘제가 <쿵푸허슬2>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등이었다. 그렇더라도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다. 전체 체육관의 3000여 명은 줄곧 일어서 있었고, 학생들은 거의 미친 듯이 날뛰었다. 체육관 밖에도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체육관 내에서는 주성치가 막 서남민족대학의 객좌교수로 초빙되자, 체육관의 모든 이들은 초빙 기간을 ‘일만년’으로 하자고 외쳤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주성치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탔지만, 출발할 수가 없었다. 창밖의 학생들의 외침 소리는 산을 옮기고 땅을 진동 시킬만 하였다. 불과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기자회견장에 못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주성치는 스스로 대책을 생각해 내었다. 먼저 학교를 떠났다가, 학생들이 흩어지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 그래서 철문이 열렸고, 인파들은 조금씩 흩어졌다. 차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경찰도 인파를 막아낼 수 없었다. 한 남색 츄리닝을 입은 학생이 뜻밖에도 차창을 열며 머리를 안 깊숙이 집어넣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주성치를 보게 해주세요.”

마침내 학교 문을 나섰다. 학생들의 3분의 일만이 흩어졌다고 알려져, 기자회견은 어쩔 수없이 취소되었다. 황성의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고, 주성치와 주가흔 모두는 찬성하였다. 그들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 막 나섰을 때, 식당은 매우 조용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 모 언론이 많은 사람들을 대동하고 나타났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식당 주변은 ‘주성치’를 외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기자간담회는 초라한 작은 식당에서 거행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주성치가 체험해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성팬이 격정적으로 그를 포옹하였고, 식당 주인도 딸을 데리고 와서는 두 장의 사인을 요구하였다. 마지막에 주성치는 많은 유리 파편으로 뒤 덥힌 바닥을 걸어야했는데, 문에 도착하자 수백 명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고, 식당의 유리문이 매우 아슬아슬해 보였다. 주성치가 문을 나서자 사람들은 그를 만지려고 하였고, 그의 모자를 빼앗아 갔다. 후에 현장의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하고, 식당의 화분들은 거의 깨져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열을 느꼈다는데...

- 북경 : 대대적인 화제 거리가 되다

최후의 지역은 북경이었다.

이번에는 CCTV가 마련한 특별 경호원이 있어서, 공항에서 아주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주성치는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우디에 매우 빠르게 몸을 실었다. 이 차는 국빈등급으로 평상시에는 단시 조어대(釣魚台, 우리나라의 청와대)에서나 볼 수 있다. 점심 식사는 매우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한 명의 기자도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점심식사에서 그는 인민대학의 마준걸(馬俊杰)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 그는 인민대학의 기보성(紀寶成) 교장과 담화를 진행하였다. 기교장은 그에게 다음번 영화의 시사회는 인민대학에 와서 상영하라고 초대해 주었다.

아마도 이 소식은 인민대학의 상학원이 갑자기 주성치를 그 학원의 겸직교수로 임명한 것을 암시해주는 듯하다. 기자간담회에서 초빙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 일은 언론매체의 대서특필 화제 거리가 되었다.

12월 14일 오후 3시, 인민대학의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서 주성치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주성치는 인민대학의 한 여학생으로부터 꽃을 받은 후, 물었다.
  “학생, 질문 있어요?”

여학생의 표정과 목소리는 매우 격동적이었다. 그녀는 말하길,
  “제가 왜 북경을 선택했는지, 왜 인민대학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는 주성치가 어느 날 반드시 이곳에 오리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에요.”

주성치는 겨울철의 불꽃처럼 학생들의 열정에 불을 붙였다. 그 날 대강당 밖의 풍경을 한 기자는 이렇게 묘사하였다.
  “마치 근로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기의 기차역 같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빽빽이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고,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매우 위험스러웠다.”

이번에 주성치는 강연이 이미 익숙해져 쉬운 듯하였다. 그리고 이번은 순회 강연회 중에서 가장 순조로운 강연회이기도 하였다.

- 교수로 초빙되다 : 첫 번째 반응 ‘매우 재미있다’

일전에 주성치 신변의 지인이 주성치가 인민대학 상학원의 겸직교수로 초빙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영화 <도학위룡>에서 ‘주싱싱 학생’역을 맡았던 그의 첫 번째 반응은 “너무 재미있다.”였다고 전하였다. 후에 주성치는 언론들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길,
  “사실 모두 이 칭호를 너무 염두에 둘 필요 없어요. 단지 객좌 교수에요. 영화의 우정 출연과 마찬가지이죠. 저와 진짜 교수는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지요.”

  “저는 저의 연기가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 세계, 전 중국에 아주 많은 훌륭한 배우들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크린 뒤에서 감독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면, 뛰어난 배우들에게 연기를 하게 할 거에요. 효과는 아마도 더 좋을 겁니다. 현재 저는 이쪽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주성치는 자신이 ‘소인물이 상류층을 쟁취하는’ 주제를 편애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였다.
  “제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소인물의 세계에서 자랐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저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지요. 요 근래에 저는 줄곧 소인물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반영된 영화를 촬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이전의 경력을 되돌아보고, 그래서 어떻게 더 좋은 영화를 촬영할지를 더 많이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모든 영화에는 감정이 들어가 있어요. 게다가 이 감정은 비교적 순수하고 단순하죠. 어떤 영화의 특수효과든, 무협이건, 모레이터우건 모두 영화의 포장일 뿐이에요. 결국 마지막에는 ‘정’이라는 글자만 남죠. 비록 감정에 대한 묘사가 영화의 주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그 효과는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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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 박소현(xingchi@hanmail.net) ♣

2005/04/12, 00:02:10  1621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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