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ify Delete Write Reply PrevNextList

  97년 7월 키노 기사 下 게시물 포워드 프린트 형식 
작성일: 2001/01/29, 12:33:21
작성자: 星熙之王星馳樣

이제 어떤 의미에서 왕정의 경쟁자는 성룡과 서극밖에 없다. 뉴 웨이브 감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90년대를 맞이할 때, 서극이 SFX와 노스탤지어의 리메이크에 매달려 있을 때, 홍콩영화의 포스트 뉴 웨이브 작가주의를 왕가위와 관금붕이 외롭게 이어나가는 정반대편에서 왕정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장르를 발명하고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포스트 천안문 시대의 홍콩영화 산업을 사수해왔다. 다시 말해서 왕정은 홍콩영화를 '망치는' 동시에 '살려낸' 인물이다. 89년 그가 만든 빅 히트작 <지존무상>과 <도신>은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끝자락을 붙잡고 카지노 영화의 붐을 몰고 왔으며, 이 새로운 경향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행심리가 빚어낸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나타나 89년 4월 천안문 사건 이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던 홍콩영화 산업을 정체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제작편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왕정은 스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동남아를 비롯한 홍콩영화의 해외배급시장에서 성공을 거듭했다. 그리고 왕정은 당시 TV드라마에서 넌센스 코미디로 인기를 끌고 있던 주성치를 기용함으로써 90년대 홍콩영화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탄생시켰다. 주성치는 왕정과 유진위가 주도한 패로디 영화의 경향 속에서 명실공히 이소룡과 미스터 부의 90년대적 캐릭터로 떠올랐다. 지금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주성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성룡과 함께 주성치는 자신이 감독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홍콩 스타가 된 것이다.
70년대의 이소룡과 80년대의 성룡, 주윤발로 이어지는 홍콩영화 영웅의 계보도에서 주성치라는 이름이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주성치에게는 이소룡의 화려한 카리스마도 주윤발의 비장미도 없으며, 성룡처럼 유쾌한 '다종목 철인 경기'영화를 찍을 능력도 없다. 오히려 그는 바보가 아닌가 싶을 만큼 홍콩이라는 시공간(을 지배하는 법칙)에 익숙하지 못하며, 모든 것을 구경하듯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다. 말하자면 그의 이미지는 시골(중국 본토)에서 이제 막 도시(홍콩)에 도착한 단순한 청년의 이미지이며 '코믹 버전 이소룡'이다(이소룡의 팬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는 홍콩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도박과 매춘과 폭력, 광동어, 임대된 공간으로서의 식민지 문화, 그리고 홍콩영화!!) 속으로 걸어들어가 당연한 과정처럼 의사소통의 장애를 겪는다. 하지만 그 장애는 주성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노련한 콤비 오맹달의 캐릭터로 대표되는)이거나 악당들이다).
그는 홍콩을 지배하는 법칙들에 의해 크고 작은 사건에 말려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그 사이를 통과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바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구원은 선의의 임무인 동시에 소일거리이며 기분전환의 오락이다(그의 영화가 그렇듯). 이것은 <투분노해>, <객도추한>으로부터 최근의 <첨밀밀>에 이르기까지 홍콩에 유입된 외부인들이 겪는 의사소통의 장애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주성치는 선의와 자신의 방법을 고수함으로써 승리를 거두고, 모든 것은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웅변하는 세상의 논리와 합리성을 박살냄으로써 웃을을 이끌어낸다. 그는 영화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상황의 중심을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영화의 중심이 되어버리고, 이러한 콘트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행위까지도 조정해낸다(이제는 그 아무도 주성치의 영화를 보면서 논리를 따지거나 개연성을 들먹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최소한의 합리적 변명처럼,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성치에게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능력(<의담영웅>)이나 투시력(<도성>), 오른팔의 괴력(<신정무문>) 같은, 극히 비합리적인 초인적능력이 (선천적으로, 혹은 우연히) 부여되며, 한편으로는 70년대 코미디 황금기의 아이콘이었던 미스터 부의 영향(코믹 연기의 타이밍을 조절하는 테크닉, 여러가지 디테일 등) 속에서 이소룡과 <영웅본색>, 홍콩 느와르와 007을 패로디한다.
왕정이 창조한 주성치의 페르소나는 바로 천안문 사건 이후 반환이라는 운명이 임박한 홍콩(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인용하고 패로디 함으로써 스스로를 재학습하는 홍콩(영화)의 모습처럼 보인다. 더 이상 영웅이 존재 할수 없고 불투명하기만 한 미래, 그 앞에서 주성치는 기존의 논리를 파괴하고 새로운 논리를 창조하는 그 불가해함의 웃음과 더불어 홍콩(영화) 전체ㅇ를 텍스트 삼아 완결성과 경계를 파괴하는 포스트 모던한 영웅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아무도 신화를 원하지 않는 시대의 홍콩에서, 종합선물상자 같은 UFO의 '순정만화'영화와 함께 왕정과 주성치의 영화들은 점점 탈정치/역사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명백히 지금 현재 홍콩(영화)의 자기반영이며, 97년 이후 '홍콩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실마리이자 전초전이다.

신혜은 기자


2001/01/29, 12:33:21  2012번 읽음  
▲ 97년 7월 키노 기사 上
▼ 주성치님이 한국에 옵니다 -> 결국엔 안 왔음


Admin Menu 게시물:1194, 쪽번호:40/40 오늘:0 
체크-선택보기 번호 제목 이름   등록날짜 조회
  24   [정보] 주성치 imdb URL 김철영    2001/01/29  2069 
  23   2000년 5월호 키노 (희극지왕) 리뷰 - 장훈 기자님 씀. 星熙之王星馳樣    2001/01/29  2356 
  22   97년 7월 키노 기사 上 星熙之王星馳樣    2001/01/29  2165 
  21   97년 7월 키노 기사 下 星熙之王星馳樣    2001/01/29  2012 
  20   주성치님이 한국에 옵니다 -> 결국엔 안 왔음 양동건    2001/01/29  2454 
  19   운영자입니다.위에 글 읽으신 분 꼬옥~ 필독 바랍니다. 운영자    2001/01/29  1951 
  18   [기사] `희극지왕`, 홍콩서 대히트한 주성치 코믹로맨스 스포츠조선    2001/01/29  2179 
  17   98년 3월호 키노 - 행운일조룡 일부 소개.. 키노    2001/01/29  2363 
  16   1999년도 8월호 키노 주성치 특집 # 1 키노    2001/01/29  2490 
  15   1999년도 8월호 키노 주성치 특집 - 성치 베스트 1 키노    2001/01/29  2868 
  14   1999년도 8월호 키노 주성치 특집 - 성치 베스트 2 키노    2001/01/29  3037 
  13   1999년도 8월호 키노 주성치 특집 # 2 - 인터뷰 키노    2001/01/29  2705 
  12   1991(?)년도 주성치 내한 당시 잡지 인터뷰 로드쇼    2001/01/29  2646 
  11   주성치 영화를 즐기는 10가지 방법 - 대문에 있던 글 정지연    2001/01/29  3636 
  10   우먼플러스에 실리지 못한 인터뷰 내용.. 우먼플러스 외전    2001/01/29  2215 
  9   파괴지왕에 관한 인터뷰 # 1 - 번역 민경은 전영쌍주간    2001/01/29  3096 
  8   파괴지왕에 관한 인터뷰 # 2 - 번역 민경은 전영쌍주간    2001/01/29  1959 
  7   전영쌍주간 339호 주성치 인터뷰 # 1 - 번역 (민경은:나우누리) 전영쌍주간    2001/01/29  2073 
  6   전영쌍주간 339호 주성치 인터뷰 # 2 - 번역 (민경은) 전영쌍주간    2001/01/29  1952 
  5   개봉영화 소개 - 희극지왕 - 200/02/23 스포츠조선    2001/01/29  1831 
  4   할리우드 감독 진출 무산 - 2000년 5월호 스크린    2001/01/29  1851 
  3   축구소재 코믹영화 제작 예정 - 2000년 3월호 스크린    2001/01/29  2218 
  2   주성치 신작영화 여배우 선정 고심 - 2000년 7월호 스크린    2001/01/29  2183 
  1   주성치 전영공작실 두번째 게시판입니다. 김철영    2001/01/29  2972 
[1][PREV]...[31][32][33][34][35][36][37][38][39][40]

 
PrevWrite Reload

EZBoard by EZNE.NET